[건립위원회 소식]임상혁 원장 인터뷰 : 위험한 액체에 뇌가 녹았다…'괴기한 죽음'이 바꾼 의사의 삶


[인터뷰]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가장자리 노동자 치료와 환경 개선에 '헌신'
36년간 노동자 의료 지원하고 실태 조사하며, 법·제도 바꿔 와
"힘든 사람 도와주는 게 공동체 복원, 지역 주민들과 건강과 돌봄 공동체 만들고 싶어"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 의대생 때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다 숨지거나 장애를 갖게된 피해자들을 마주한 뒤, 이후 36년의 삶이 바뀌었다. 노동자들을 치료하고, 조사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환경을 만들까 연구하고. 그날 이후 한 번도 그 길을 벗어나지 않았단다./사진=남형도 기자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 의대생 때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다 숨지거나 장애를 갖게된 피해자들을 마주 한 뒤, 이후 36년의 삶이 바뀌었다. 노동자들을 치료하고, 조사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환경을 만들까 연구하고. 그날 이후 한 번도 그 길을 벗어나지 않았단다./사진=남형도 기자 


의대생이 처음 마주하는 광경이었다. 수업 때 설명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맨 처음엔 굉장히 무서웠단다. 환자들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아주 이상한 표정으로 괴기한 소리를 질렀어요. 뇌가 많이 망가져 있었고요. 좀 겁난단 생각을 했었지요."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이 36년 전을 회상했다. 때는 1988년. 당시 한양대 의과대학에 다니던 그를 두렵게 한 환자들. 구리시 원진레 이온이란 큰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었다.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광경. 무색무취의 이황화탄소가 그리 많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갔다./사진=남형도 기자(녹색병원에서 촬영)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광경. 무색무취의 이황화탄소가 그리 많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갔다./사진=남형도 기자(녹색병원에서 촬영) 


그들은 옷을 만드는 섬유인 '레이온 실'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이황화탄소란 유기용제로 원료를 녹여야 했다. 색도 냄새도 없었던 위험한 액체. 커다란 공장 공기에 이황화탄소가 섞였다. 노동자의 들숨에 파고들었다. 폐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몸속에서 뇌와 신경세포를 녹였다. 노동자는 말이 어눌해지고 손발이 멎었다.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하게 됐다. 지금까지 3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300명이 넘는.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들이 집회하는 광경./사진=남형도 기자(녹색병원에서 촬영)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들이 집회하는 광경./사진=남형도 기자(녹색병원에서 촬영)  


의대생이었던 임상혁은 조사하고 목격했다. 이들의 가정이 한순간에 깨지고 나아가 숨지는 것을. 직업병을 인정받으려 싸우는 것을. 대책 없이 닫힌 공장문을 보며 또 싸우는 것을. 곁에서 플래카드를 만들며 연대했다. 이어 맘먹었다.

"어렵고 힘든 분들을 보면서 '내가 의사로서 이걸 좀 해야 되겠구나'. 그게 가장 큰 동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한 번도 그 길을 벗어나지 않았지요." 


(중략)

녹색병원이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전태일의료센터'. 이는 지금껏 해온 치료를 더 잘하자는 의미이며, 병원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다 같이 하자는 의미라고 했다. 임 원장이 진단한 사회는 꽤 아픈 상태인 듯했다.


"우리가 단순하게 아픈 사람 병만을 치료하는 게 아니에요. 아픈 사회를 치료하고, 아픈 사회와 함께하자, 이런 거거든요. 아무도 손대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아픈 사회일 수 있잖아요. 노인들이 새벽에 나가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져요. 근데 그걸 국민들이 힘을 합쳐 그런 걸 바꿔보면, 정말 아픈 사회를 치유하는 모습이 되겠지요."

그럼 사회는 왜 아픈가를 물으니, 의사는 '양극화'를 원인으로 꼽았다. 경쟁이 심하고 공정하지 못한 사회. 그런 게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는 걸 막아내는 거라고.

처방전은 '공동체 회복'이라고 했다.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게 공동체가 복원되는 거라고. 녹색병원은 그런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고 했다. 예컨대, 이런 걸 꿈꾼다고 했다.

"방문 의료센터도 만들고 싶어요. 우리가 방문 진료를 가면 하루 종일 집에만 계시는 분이 있어요. 그분이 왜 못 움직이냐면 휠체어가 턱을 못 넘는 거예요. 반지하 계단, 못 올라오죠. 그거만 없애주면 마을로 나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웃이 집을 고쳐주고, 휠체어를 밀며 함께 산책하고. 지역 주민들과 건강과 돌봄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 그런 걸 해보면 좋겠어요."

 

일용직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느라 걸어둔 안전모들. 하나하나 빠짐없이 누군가 사랑하는 가족. 더하여 두 번은 없을 고유하고 귀한 생이다./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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